한때 청와대 경호원으로 지낼 때 맞선 본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그를 전율케 하더니 이젠 인생의
반려자로 늘 그의 곁을 지켜주고 있다.
경기 신포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고， 아들 `태주`군이 태어나면서 기타교
실도 내 제법 수입도 올렸지만 그것도 잠시， 의왕 천계산의 자연의 신비감
에 매료돼 유랑길에 올랐다.
그로부터 20여년. 전국을 헤맨끝에 지리산 자락에 잠시 짐을 내려 놓은
이들 가족. 지리산 형제봉과 악양들판이 방안에서도 한눈에 바라보이고 하
루종일 햇살이 드는 이곳에서 이들 음악인 가족은 흙내음에 취하고 새소리
물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자연속에서 살고 있다. 서로가 자연속의 동료이자
음악적 동지로서 말이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지만 싫증나지 않는 삶. 오히려 큰 산의 정기가 뻗
쳐서인지 그동안 애매모호하던 음악의 개념이 선명해지면서 비로소 자유로
움과 참 행복에 젖어들었다는 한치영씨. 이곳에 들어와서 음반 `우리들의
시인`（5집）을 냈다.
비록 지금까지는 부모들의 삶을 따라왔지만 흙피리 소년으로 알려진 태주
（18）군의 음악의 원천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탓에 온전히 자연이다. 역시
생활한복차림에 검은 생머리를 짧게 묶은 가녀린 그의 얼굴에선 미소년의
해맑음이 전해져 오는듯하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 네 살때 서정적인 동요 테이프를 틀어주었는
데 오랫동안 꼼짝않고 듣고 있더란다. 눈물을 흘린채. “음악이 슬플 정도
로 너무 아름다워서”가 그 이유. 태주군이 음악을 들으면 수백 수천번을
듣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가 초등학교 4학년때 생일선물로 받은 흙피리（오카리나）는 처음으로
갖게 된 자기 악기. 새소리를 듣고 `삐이∼ 삐이∼ ` 곧장 흉내를 내더니
어느날 그가 흙피리를 불면 새들이 모여들어 합창을 하곤 했다고 아버지 한
치영씨는 들려준다.
바람결이 늘 변하는 것처럼 물소리도 한시도 같지 않듯이 자연의 소리，
삶에서 느낀 경험과 마음의 흐름에 귀기울여 노래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소리는 살아있다.
무의식속에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영감과 타고난 음악적 감성을 흙피리
로 만든 첫 음반이 〈하늘연못〉이다. 맛있는 동태찌개를 끓여준 어머니의
고마움을 `하늘연못`에， 아빠랑 수영하면서 분출하는 몸의 에너지를 `물놀
이로`로， 지는 노을의 아름다움을 `노을꽃`으로 담아냈다. 생활속에 무심
코 내뱉는 “아이고 좋아라`도 `두두둥 두∼둥`이란 노래로 표현해내듯 자
연속에서의 삶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살아 있는 자연의 숨결을 내놓기 위해서는 자연 속에서 부대껴야죠.”
태주군은 초등학교 외에는 제도권 교육을 받고 있지 않다. 자연속에서 흙
피리 연주자로 평생을 살겠다는 그의 뜻을 부모가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
이다.
그래도 잠깐 들른 화장실에선 `사자소학`과 `영어`단어를 적어 놓은 메모
지가 눈에 띈다. 세계화에 따른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위함이라는 것이 어머
니 김경애씨의 설명이다.
“인기와 상관없이 단 1곡이라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음악을 만들
고 싶어요. 생명을 살리는 햇살같은 밝은 기운， 나무와 물처럼， 산소처
럼 맑은 기운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을요.” 태주군의 바람이다.
맨발로 흙을 밟고， 은행나무에 기대 서서 바람소리에 귀기울이며 대자
연 속에 하나된 그들의 삶은 살아있는 소리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맑게 씻
어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