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꺼내려 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추억이 아닌 아픔이었다. 그의 이름은 '유도 영웅' 김재엽(43)이다.
19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1987년 세계선수권 우승.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 등 1980년대 유도 경량급을 지배했던 김재엽은 현재 유도 지도자가 아닌 교수란 직함을 달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동서울대 경호안전학과 김 교수라 부른다.
유도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김 교수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 김 교수는 "유도계를 떠난 지 10년이 다 돼 간다"며 퉁명스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 김 교수는 "좋게 표현해서 나왔다고 말하는데 그간 마음 고생이 심했다. 한국 유도는 선수로 뛰던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고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1998년 파벌 분쟁에 환멸을 느껴 유도계를 등졌다고 밝혔다. "다들 아시겠지만 용인대가 문제다. 자기들 밥그릇만 챙긴 지도 40년 정도 됐을 거다. 여전히 비용인대 선수들은 권력의 힘으로 국가대표에서 제외되곤 한다. 윤동식 그리고 추성훈처럼. 추성훈이 왜 일장기를 달았겠는가"란 김 교수의 설명이다.
덧붙여 김 교수는 "유도인들의 길을 막고 있다. 집행부란 사람들이. 실업팀도 점점 축소되는 실정이다. 왜 그렇겠는가. 항상 결과가 같기 때문이다. 한국 유도는 안타까움 그 자체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부연했다.
최근 들어 유도 선수들의 이종격투기 진출이 늘고 있다. '무도'를 하는 사람들은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김 교수는 "상황 자체가 어쩔 수 없다. 물론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나쁘다는 생각은 안 한다. 비단 유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투기종목에 몸담고 있는 모든 선수들의 문제다. 세계 대회 메달리스트들 80% 이상은 직장과 집이 없는 현실이다. 아닌 선수들은 어떻겠는가. 안프라가 극악인데…"라며 혀를 찼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김 교수는 "교수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이 쪽을 키우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국가대표에서 탈락해 할 일이 없는 선수들. 살 길이 막막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이종격투기 전향과 일자리를 구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것을 위해 지금 준비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 자신은 "후회없는 선수 생활을 했다. 그것으로 이미 행복한 선수였다"고 현역 시절의 기억을 짧게 언급했다. 이제는 다른 이들의 후회를 지우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