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7시 20분경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 오 서울시장후보의 유세장에 도착한 박 대표가 지지연설을 하려고 연단에 오르려는 순간 청중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지모(50) 씨가 박 대표에게 악수를 청하는 척하다 왼손에 들고 있던 15㎝ 길이의 문구용 커터칼로 박 대표의 오른쪽 뺨을 그었다.
곧이어 박모(54) 씨와 또 다른 한 명이 합세해 박 대표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난동을 부렸다.
유세 현장은 비명 등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으며 유정복 대표 비서실장과 박 대표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이 지 씨와 박 씨를 붙잡았으나 나머지 한 명은 그대로 달아났다고 한나라당 관계자는 전했다.
얼굴에 길이 11㎝, 깊이 11~3㎝ 가량의 열상(裂傷)을 입은 박 대표는 사건 직후 인근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져 봉합수술을 받았다.
◇경찰…범인 2명 조사
경찰이 1차로 추정한 지 씨의 범행동기는 1991년부터 15년에 가깝게 장기 복역을 한 지씨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세현장 연단에 올라가 난동을 부리고 박 대표에 폭력을 행사했다가 지 씨와 함께 붙잡혀 경찰에 넘겨진 박모(52) 씨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부터 열리우리당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낸 사실이 밝혀졌다.
박 대표 피습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은 21일 이같은 내용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지씨는 전과 8범으로 14년 4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했고 박 씨는 2004년부터 매달 2000원씩 열린우리당에 후원금을 입금했다고 진술했으나 일단 지 씨와 박 씨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지 씨가 국가인권위원회 등 여러 국가기관에 이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외면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미혼인 지 씨가 지병(당뇨)을 앓고 있고 한 쪽 눈이 실명된 상태이며 가족으로는 치매 증세가 있는 노모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가족과 왕래 없이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 씨는 또 지난해 12월 사립학교법 개정 장외투쟁 중인 한나라당의 유세현장을 찾아가 K의원을 폭행한 사실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지 씨가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유세 일정과 장소 등을 확인한 뒤 범행에 사용한 문구용 칼을 구입한 점으로 미뤄 범행을 미리 계획한 것으로 보고 범행동기와 공범 여부를 집중 조사 중이다.
경찰은 이들이 횡설수설하고 있어 정신 감정을 의뢰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한편 '박근혜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모임' 80여명은 서대문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엄정 수사를 촉구했다.
◇박대표 1주일 입원 전망
박 대표는 사건 직후 당직자와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자신의 에쿠스 승용차편으로 인근 신촌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며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흔들림 없이 선거운동에 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2시간 가량 걸린 박 대표의 수술을 집도한 탁관철 신촌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교수는 수술 뒤 브리핑을 갖고 "1주일 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고 퇴원하더라도 당분간 입을 많이 움직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전했다.
탁 교수는 "말하는 것이 자유롭게 되려면 몇 달은 지나야 한다"며 "오른쪽 귀옆부터 입 옆부분까지 11㎝ 가량 곡선형으로 심각할 정도로 열상이 있었으며 상처 깊이는 1~3㎝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볼 주변의 상처가 가장 깊었고 침샘과 근육도 다쳤다"며 "다행히 안면 근육은 손상되지 않았고 경정맥과 경동맥을 비켜나가 생명에 지장이 없으나 0.5㎝만 상처가 깊었어도 위험할 뻔 했다"고 말했다.
탁 교수는 또 21일 오전 11시경 20층 병실 앞에서 브리핑을 갖고 "상태는 좋은 편이며 잘 치유가 되고 있는 상태로, 전날에 비해 많이 안정을 되찾은 것 같지만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턱근육이 아물지 못해 거의 말은 못한다"고 말했다.
탁 교수는 "이틀 후 1차로 절반 가량 실밥을 뽑은 뒤 다시 이틀 후 나머지 실밥을 뽑을 것"이라며 "워낙 인내심이 많아 고통을 호소하지는 않고 있지만 당분간 통증은 이어질 것이다. 주로 누워 있지만 병실에서 조금씩 움직일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박 대표는 이날 오전 빨대로 미음을 조금 마신 뒤 소독치료를 받았으며, 회진의사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의 피습 소식이 알려진 뒤 세브란스 병원 앞에는 시민 수십여명이 몰려 박대표의 병세를 걱정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 강삼재 전 사무총장, 이명박 서울시장, 박계동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김문수 경기지사 후보, 이재오 사무총장 등이 병원을 찾아 박 대표의 안부를 챙기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측이 박 대표의 절대안정을 주문하며 면회 자제를 요구, 동생 박지만 씨 부부 등 가족을 제외하고는 면회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외신, 박대표 피습사건 비중있게 보도
외국 주요 언론사들은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사건을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비중있게 보도했다.
AP통신은 사건 발생 30분쯤 후인 20일 오후 8시경 박 대표의 피습 소식을 긴급으로 타전한 뒤 상보를 통해 박 대표의 부상과 용의자 검거 소식을 자세히 보도했다.
AP는 "박 대표가 지원 유세를 위해 단상에 오르다 괴한이 휘두른 문구용 커터에 오른쪽 뺨을 다쳐 10㎝의 상처를 입었으며 용의자는 현장에서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 용의자가 50대이며 다른 공범 1명도 함께 붙잡혔다고 덧붙였다. 미국 CNN 케이블 뉴스 채널도 AP 통신발로 박 대표의 피습 소식을 즉각 전했다.
AFP통신도 "내년 실시되는 한국 대선 출마 후보 중 한 명인 박 대표가 선거 유세 도중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대표가 괴한의 흉기에 오른쪽 뺨을 다쳐 수술을 받았으며 이날 중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는 "한국의 가장 저명한 여성 정치인 중 한명인 박 대표가 선거 유세 도중 피습을 당했다"고 전하며 "박 전 대통령에게 향수를 가지고 있는 중장년층 유권자 사이에서 박 대표는 탄탄한 지지를 얻어왔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용의자가 술 취한 상태인 점을 들어 경찰이 사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한나라당 측의 비판도 함께 소개했다.
일본 교도통신도 박 대표 피습 소식을 전하면서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용납될 수 없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신화통신은 박 대표가 즉각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전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 주요 정치인 테러ㆍ습격 사례
-1945.12.30 =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정치인 송진우, 자택서 저격당해 사망
-1947.7.19 = 중도좌파 정치인이던 여운형, 귀가중 극우파 청년 한지근의 저격으로 사망
-1949.6.26 = 독립운동가 출신의 정치가 김구, 귀국 이후 숙소 겸 집무실로 사용하던 경교장(京橋莊)에서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피살
-1966.9.15 = 김두한 의원이 국회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장기영 부총리 등 국무위원들을 향해 분뇨 투척
-1969.6.20 =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의 자택 부근에서 매복하고 있던 괴한들이 김 총무의 승용차 창문에 초산 뿌림
-1973.8.8 = 신병치료차 일본에 체류 중이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씨, 일본 도쿄의 팔레스 호텔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한국으로 끌려옴
-1991.6.3 = 정원식 신임 국무총리 서리, 한국외국어대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가 대학생들로부터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받음
-1999.6.3 = 퇴임 후 첫 외국출장을 가려고 김포국제공항에 나온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의정(당시 71세)씨로부터 빨간 페인트가 든 계란을 맞음
-2006.5.20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방선거 지원유세 도중 흉기를 든 50대 괴한 지모씨에게 피습
